근래의 더위를 생각하면 그날 밤은 결코 덥지 않고, 때때로 강한 바람이 불기도 하여
오히려 지내기 편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구라 치즈루(神? ちづる)가 눈을 뜬 것은 더위 탓이라기 보단
벌레 울음소리가 멈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
뜰로 이어진 미닫이 문을 통해 비춰지는 보름달 빛이 방 안을 푸르고 조용하게 비추고 있다.
그 미닫이 문에 홀쭉한 그림자가 비치고 있는것을 눈치챈 순간, 치즈루의 의식은 완전히 각성했다.
「누구?!」
숨죽인 목소리로 누구냐고 묻고나서 곧바로 치즈루는 자신의 미숙함을 깨달았다.
이렇게 똑바로 그 그림자를 응시할 필요없이 기색을 찾으면, 뜰에 기척도 없이 나타난 방문자의 정체는 곧바로 알게된다.
치즈루가 부끄러워한 자신의 미숙함을, 그림자 또한 눈치 챈 것 같다.
「…얼이빠졌군, 카구라」
저음의 비웃음이 날아왔다.
「당신이야말로──」
하얀 주반의 가슴께를 꽉 쥐며, 치즈루는 이불위로 몸을 일으켰다.
「당신이야말로 아직도 불을 잃은 상태겠지요?」
「그게 뭐 어쨌다고?」
그 오만한 대답에 치즈루는 받아칠 말이 없었다.
보라색의 불꽃을 잃고도 그는 여전히 강하다.
치즈루의 경호를 위해 이 저택에 고용되어 있는 보디가드들을 죄다 쓰러뜨리고 이곳까지 온 것을 생각한다면,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었다.
치즈루는 "거울의 힘(鏡の力)" 을 잃고 패기조차 잃어버리고 있던 자신과는 너무나도 다르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너의 힘이 돌아왔다고 생각해 상태를 보러 왔지만… 역시 그 애송이를 처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군.」
치즈루는 남자가 돌아가려는 기척을 느끼고, 급하게 손을 뻗었다.
「기다려요 야가미(八神)! 이건 당신에게 있어 좋은 기회라 생각치 않나요?!」
「…뭐가 말이냐?」
「당신이 사용하는 야가미의 불꽃은 이 660년 사이에 오로치의 힘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섞여버리고 말았어요.
하지만 당신이 "곡옥(勾玉)" 의 힘과 불꽃을 잃어버린 지금이라면── 지금이라면 야가미가(家)가 오로치의
주박에서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구요?」
「하찮군.」
남자는 치즈루의 호소를 한쪽 귀로 듣고 흘려버렸다.
「…나는 나다. 야가미가의 일따윈 모른다.」
「야가미──」
치즈루는 조금 더 남자를 불러 세우려고 자신이 얼마나 부조리한 것을 입에 담고 있는 것인지, 이제서야 깨달았다.
야가미가의 불꽃 "야사카니의 곡옥(八尺瓊の勾玉)" 의 힘── 그것이 오로치의 피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라면,
그가 오로치와 결별하는 것은 자신의 불꽃을 영원히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오로치를 봉인한 "삼신기(三種の神器)" 의 일부를 영원히 잃게되는 것이기도 하다.
그 딜레마에 치즈루는 창백해졌다.
「안심해라. 곧 너의 "거울" 도 돌아갈 것이다.」
침묵을 지키던 치즈루에게 사라지려고 할 무렵 그리 말했다.
「…더욱이, 다음에 잃어버리는 건 검(?)이니까 말이지.」
「그만두세요. 야가미!」
치즈루는 이부자리에서 나와 장지문을 열었다.
하지만 거기엔 푸른 달빛이 비추는 고요한 정원만 있을 뿐 붉은머리의 사내는 어디에도 없었다.
◆◇◆◇◆
바로 아래의 간선도로로 대형트럭이 지나갈 때 마다, 육교 전체가 살짝 흔들렸다.
비바람이 계속 몰아쳐 여기저기 페인트칠이 벗겨져 녹이 슨 육교는 어쩐지 거대한 동물의 무참한 사체처럼 보였다.
그 육교를 천천히 오르고 있던, 야가미 이오리(八神 庵)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달을 올려보았다.
「……」
오른손가락에 끼고 있는 담배가 거의 재로 변했을때 이오리는 당돌하게 말했다.
「사자(死者)나 다름없는 놈이 이제와서 무슨 용무냐?」
하늘에서 땅으로 향한 냉철한 눈빛이 육교 끝에 머물러 있는 시커먼 그림자를 응시했다.
「원망을 늘어놓으려 나타난건가? 그게 아니면 한 번 더 죽여줘 같은 소릴 지껄일 참인가?」
이오리의 발언에 어둠이 응답한다.
「인사야, 야가미… 오랜만에 만났는데」
「한 번 더 하늘을 봐… 전에 말했었지? 만월(?月)의 밤에 다시 만나자고」
「──」
숨막힐 정도로 요염한 여성의 목소리였지만, 이오리는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이오리의 시선을 받고 그림자가 움직였다. 고요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그림자는 다음 순간 확실하게 형태를 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곧 2차원의 세계에서 3차원의 세계로 나선 순간, 그림자는 아름다운 여성들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이오리는 담배꽁초를 던져버리고 가늘게 눈을 뜨며 읊조렸다.
「…무슨 미련이 있어서 나타났지?」
「미련? 그딴거 없는데」
붉은 머리의 바이스(バイス)는 크게 몸을 비틀고 늘리며 대답했다.
검은 판실크로 감싼 몸이 구부러진 모습은 마치 먹이를 노리는 뱀을 떠올리게 했다.
「──원래 나타날 생각 같은건 없었어」
「그럼 어째서 여기 있지?」
「글쎄 왜 일까나… 어쩌면 당신들이 예상과 달리 너무 한심해서가 아닐까?」
새침한 얼굴로 대답한 금발의 매튜어(マチュア)는 오른눈에 찬 안대를 누르며 붉게 젖어 빛나는 입술을 치켜 올렸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카구라에 이어 야가미… 당신까지 당한 거잖아? 그 애쉬 크림슨(アッシュ?クリムゾン)인가 하는 꼬맹이한테.」
「게다가 묘한 녀석들이 오로치의 힘을 노리고 있지? "머나먼 땅에서 온 자들(?けしかの地より出づる者)" 이라는 녀석들이 말이지.」
「…모른다. 흥미는 없다.」
「그거야 당신은 그렇게 말하겠지. 자기자신한테 밖에 흥미가 없으니까.」
「하지만 우리한테는 그렇지 않아.」
「오로치의 힘을 쉽사리 빼앗긴건 부아가 치밀겠지?」
「그래서 우리가 온거야.」
어둠을 등지고 여인들의 3개의 눈동자가 요염하게 빛나고 있다.
매튜어도 바이스도 이오리가 그 손으로 목숨을 끊었을 터인 여인들이었다.
이오리는 주머니에 손을 쑤셔넣고 입술을 씰룩였다.
「일부러 카구라의 뒷처리를 해준 건 수고했다… 그런데 네년들이 뭘 할 수 있단 말이지?」
「글쎄, ──하지만 서로 뭔가 이용가치 정도는 있겠지. 그렇지?.」
「당신의 목적은 그 꼬맹이, 우리들은 그 녀석들… 어느쪽이든 대회에서 승리해나가면 언젠가 맞딱들일 상대야.」
「…항상 그렇지만, 하찮은 장난이군.」
「확실히 그러네. 하지만 그 장난에 어울려 주는게 결국 가장 빠른 지름길이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형식뿐이라곤 해도
팀 메이트가 필요해. 알겠어? 야가미 군.」
「흥──」
이오리는 흥미없다는 듯 콧소리를 내고 걸었다.
매튜어와 바이스의 곁을 지나쳐 육교를 내려간다.
이오리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등 너머로 덧붙였다.
「미리 말해두지. 혹시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네년들에게 용무는 없다, 지?… 알고있어.」
바이스의 소리없는 웃음이 내려앉는다.
「우리도 기대하고 있을게. 불꽃을 잃어버린 지금의 당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당신이니까. 우릴 실망시키진 않겠지만.」
「…주둥이가 요란한 건 죽어도 변하지 않은 것 같군.」
육교를 다 내려와 멈춰서서 뒤를 돌아본다.
이오리를 내려다 보고 있을터인 여성들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없고 앞머리 너머 이오리의 시선 저편에는
너무나도 맑은 푸른 달이 고요하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
이오리는 새로 담배를 꺼내, 잘 길들인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어둠속에서 그 여인들의 안광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빛이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옅은 연기가 만월이 기다리는 밤하늘로 퍼져 올라갔다.
─── The King of Fighters XIII 八神チ?ム スト?リ? - 完
중간에 짤린건가요?
어쨌든 바이스랑 매튜어가 눈&팔 고자로 되돌아 왔군요 ㅡㅡ;
여자니깐 고자라는 단어는 영 아닌가 ㅋㅋ.. 어쨌든 셋다 검은 마이를 입고 있네요 ㅋㅋ